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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를 들뜨게 하는가?

줄리아 헤븐 김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10-30 08:43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막상 두고 가려니 못내 아쉽기만 하다.
처음부터 내 것은 아니기에 욕심을 부릴 처지는 못되지만, 욕심을 낸 들 내 손에 쥐어 질것도 아니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조차도 실은 우스운 일이다.
작은 아들아이가 밴쿠버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부터 언젠가 내게 지금과 같은 일이, 일어 날 수도 있다는 걸 예상 했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떠나는 것에 대한 회한이 그리 크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
이사 날을 넉 달여 남겨 놓고, 첫번째 빈상자를 꺼내드는 순간부터 예기치 못한 것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차라리 물건에나 욕심을 냈다면, 그다지 즐겨 사용하지 않는 것이어도 일단, 상자에 넣고, 테이프로 둘러 싣고 가버리면 그만일테지만,  내가 아무리 아깝고 아쉬워 용을 써 본들, 상자 안에 들어 앉아 냉큼 내것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이제 것 몰랐던 나의 쓸데없는 물욕?과 욕망?에 실은, 나도 내가 당혹스럽다.
좌, 우, 아래, 위로 끝 없이 펼쳐진 드넓은 바다와 수평선 조차 가늠 할 수 없는 시원한 바다향을 머금은 광활한 하늘이 보고 싶다면, 잰 발걸음으로 삼분여 뒷길로 걸어 나가면, 만날 수가 있다. 게다가 수평선 저 끄트머리엔 하얀 고깔 모자를 얹어놓은 듯한 눈 덮힌 미국 땅의 산자락이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일년 내내 새로운 그림을 걸어 준다. 마치 하나님의 갤러리인 것 처럼 다양한 그림을 담아 내던 곳. 하늘거리는 하얀 레이스의 면사포를 물 위에 띄어 놓은 듯이, 달빛에 비친 은빛물결은 어떻고, 석양을 품어 물들어 가는 다홍 빛깔의 하늘 빛은 또 어떤 가?
이름 조차 붙여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각양각색의 색깔과 빛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멋진 노을의 향연에 내 가슴이 늘 뛰던 곳이 그 곳이고, 내가 이사짐 안에 담고 싶어도 담지 못하는 것 또한 그 곳이다. 하얀거품을 입에 물고 위풍당당한 기세로 거침없이 내게로 달려오던 그리운 동해 바다의 거센 파도는 비록 아니지만, 그래도 난 잔잔한 호수같은 이 바다가, 아니 내 동네, 내 이웃의 바다가 좋았다. 저 멀리 한국에서 반가운 친구들의 소식과 정다운 목소리라도 듣게 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 곳을 찾아 시린 가슴을 달래며 그리움을 뱉아내곤 했다.
만 십년 전, 마지막 보따리까지 여며  태평양 너머의 빅토리아로 떠나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나의 사춘기와 청춘을 또, 내 인생의 삼분의 이를 담아 놓은 추억이라는 앨범을, 기억 속에 함께 공유하던 몇 몇의 여고동창들과 이름하여 송별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녀들이 나를 데려 간 곳은 해가 지는 것이 가장 예쁘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서해 바다의 몽산포 해수욕장이었다.
낙조가 많이 닮았다고 느꼈던 탓인지.....
특히나 저녁 놀을 유난히 좋아했던 탓에, 내가 두고 온 것들이 그립고 보고 플 때면 이 곳, 우리 동네 바다에게서 위로를 받곤 했다. 마치, 생텍지 페리의 어린왕자가 몹시 슬플 때마다 해가 지는 것을 보았던 것처럼.... 아마 이 곳이 어린왕자의 작은 별과 같았다면 나도 석양을 보기 위해 의자의 방향을 바꾸어 가며 족히 마흔번은 넘겼으리라.
하지만, 아쉽게도 난 운이 좋아야 그나마 하루에 한번이라 도 내가 원하는 노을빛깔의 하늘을 만날 수가 있었다.

"엄마, 왜, 이사가기 싫어? 슬퍼?"
너부러진 빈 상자들이 눈에 들어 와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쓸어 넣고, 다시 꺼내고... 반복된 나의 행동을 주시하던 아들아이가 묻는다.
아마도 자연스럽지 못한 나의 행동거지가 자신의 학업으로 인해, 밴쿠버로 터전을 옮겨야 하는 엄마가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하고,  신경도 쓰이는 모양이다.
"으응~ 아냐, 슬프긴... 막상 담으려니 뭐 부터 담아야 하나 … 넣다보니 담아야 하는 순서가 이게  아닌 것도 같고....".  말끝을 흐리는 내게,
아들녀석은 "엄마,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요" 한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들녀석의 도톰한 손바닥 안에 진심이 배인 따스한 온기가 고스란히 어깨를 통해 내 마음으로 스며 든다. 그 순간, 사 나흘 동안 소화되지 않고, 목 줄기 넘어까지 차 올라 있던 그 무언가 가 따스한 온기를 타고 위액에 섞여 잘 뭉그러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마치 소리를 동반한 시원스레 터져 나오는 트림과 같이, 지금 까지 전혀 떠 올려 보지도 않았던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뭉클거린다.
나의 시름과 기쁨을 담고, 풀어 내 주던 다정한 친구 같은 내 동네, 내 이웃의 바다와는 이별이지만, 이별은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고, 떠남은 새로운 곳을 향한 정착의 시작점이니
딱히 무엇이라고 표현하지 못할 그 무언가 가  ‘희망’이라는 이름을 적어, 슬그머니 이름표 하나를 내게 달아 준다.
비록, 희노애락을 나누던 가까운 지인 조차 없는 생소한 곳이지만, 늘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위해 준비 해 주시고 계획 해 주시는 그 분의 사랑을 떠 오르고 기대하니 그제서야, 소풍 날을 받아 든 어린 소녀처럼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의 마지막 대사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기에 나도 내일의 ‘오늘이 기대가 된다. 희어지는 머리카락이 보기 싫어 달 마다 염색을 하고 있는 적잖은 나이임에도 들뜨는 감성은 나이완 무관 한 것 같다.
나를 들뜨게 하는 그 무언가 가 있기에 쉼없이 꿈을 꿀 수가 있고, 희망을 갖고 삶을 지탱 할 수 있는 것은 이 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기대에 찬 물음이 내게는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무엇이 나를 들뜨게 하는가?’ 

-2015년 3월28일 이사짐을 정리하며……
줄리아 헤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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